과천의 역사
과천의 인물
과천의 지도
지정문화재
비지정문화재
명소
과천8경
기타문화재
무동답교
과천나무꾼놀이
줄다리기
석전대제
원소절
도당제
보부상 두령뽑기
게 줄다리기
구전설화
민담
민요민담녹취록

 
조선방역지도  연주대  효령대군 영정 
과천향교  연주암 3층석탑  관악사지 
보광사 목조여래좌상  문원리 삼층석탑  문원리사지 석조보살입상 
관악산육봉일명사지  온온사 

조선방역지도

국보 제248호
지정연월일: 1989년 8월 1일
소재지: 과천시 중앙동 2-6(국사편찬위원회)
조선방역지도는 1287년 8월 1일 과천에서는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이자.국보급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다.
이 지도는 명종 12년(1557) 8월부터 명종 13년 2월 사이에 제용감에서 전국의 공물 진상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제작했던 것으로추정된다. 비단위에 채색 안료로그려진 조선방역지도는 우리나라8도의 주와 현을표시한 '8도주현도'로서 상단에 '조선방역지도' 라고 씌어있고 중앙부에 우리나라 전도(G3×98.5cm)가 그려져 있다 주와 현의 명칭은 8도별로 색상을 구분하여 원안에 표시했고 하단에는 지도 제작에 참여한 사람의 이름을 적은 좌목이 있다.
조선방역지도는 임진왜란 때 다른 문화재와 함께 왜군에의해 약탈되어 대마번(대마도에 설치했던 일본의 봉건통치기구)에 소장되어 있던 것을 일제 강점기조선사편수회에서 식민통치사료로 이용하기 위해다른 종가문서와 함께 구입(1929 . 1938년)했던 것인데, 해방 후 국사편찬위원회가 인수하여 종가문서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조선방역지도는 조선전기에 제작된 지도 중 비교적 정확한 원본 지도다. 특이한 것은 울릉도와 독도가 빠져 있는 반면 대마도와 만주지방을 우리나라로 표시한 점이다. 울릉도와 독도가 빠진것은 해상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였으므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 대한 영토 개념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해석 된다. 반면 대마도는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영토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므로 멀리 떨어져 있어 조정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왜구의 소굴이 되었다고 판단 의도적으로 우리나라 영토에 포함시켰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만주지방을 표시한 것은 이 지역이 엿낱부터 우리 영토였기 때문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영토의식에서 벗어난 만리사상의 결과엾던 것으로 추정된다.
DATA 위치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



National Treasure No. 248 Printer
Specify date: August 1, 1989
Location: Gwacheon, Jungang-dong 2-6 (National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Defense of Korea is August 1, 1287 in Gwacheon
As the only designated national treasures and cultural assets. Jidoda the oldest in the country include national treasure.
This map Myeongjong 12 (1557) August 42 February to 13 years Myeongjong jeyonggameseo national tribute was made to determine the truth of information is estimated. Coloring pigment painted silk on top of the Korean defense to escape the country eight degrees, the current state of hyeoneulpyosihan '8 'at the top as the' defense of Korea, Korea says, and conduction in the central part (G3 × 98.5cm) states that are depicted prefecture name to the 8 dobyeol distinguish colors were displayed in the circle at the bottom of the name of the person involved in production is less jwamokyi.
When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Map of defenses in conjunction with other cultural property has been looted by the Japanese daemabeon (Tsushima Japan's feudal rule was installed in the organization) Number of joseonsa Japanese colonial rule at that time was housed in the colonial rule to use as feed and other closing documents purchased (1929. 1938) geotinde the liberation of the National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the closing arguments have been discovered in the process of classifying documents.
Map of Korea that the Korean defense, a relatively accurate source of electricity produced jidoda. Dokdo is unusual and out of Dokdo and Tsushima, while South Korea expressed as the province is 10,000 shares. Dokdo Dokdo and the agony did not develop marine transportation era Being on an island far away because the soil is interpreted as a lack of concepts. Until the Tsushima Korea, while Korea Electric territory, far away from the perception that the dominant control of the management yieoteumeuro soholhan crack den of two other Japanese pirates believe intentionally country is estimated to have included in the territory. In addition to display the province is 10,000 shares yeotnatbuteo this area because it was our territory to the Yalu and Tumen boundaries of the territory beyond the Great Wall in the history of consciousness gyeolgwayeopdeon estimated.
Own position on the National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国宝第248号指定年月の: 1989年 8月 1日所在地: 果川市中央洞 2-6(国史編纂委員会) 朝鮮防疫指導は 1287年 8月 1日果川では唯一に国宝に指定された文化財と同時に.国宝級では我が国で一番古い負け.
この指導は明宗 12年(1557) 8月から明宗 13年 2月の間に第勇敢で全国の供え物真相内容を把握するために製作したものと推定される. 非単位に彩色アンリョログリョジン朝鮮防疫指導は我が国の8道の株とヒョンウルピョシした '8逃走県も'として上端に '朝鮮防疫誌も' とスィオイッゴ中央部に我が国の前途(G3×98.5cm)が描いたんですあって株と現の名称は 8道別で色相を区分して原案に表示する下端には指導製作に参加した人の名前を書いた座目がある.
朝鮮防疫指導は壬辰の乱の時他の文化財とともにウェグンエウィして掠奪されるデマボン(対馬島に設置した日本の封建統治期で)に所長されるあったことを日帝強点期朝鮮史編修会で殖民統治史料で利用するウィヘダルン終値文書とともに購入(1929 . 1938年)したことだが, 解放後国史編纂委員会が引き受けて終値文書を分類する過程で発見された.
朝鮮防疫指導は朝鮮前期に製作されてからも中比較的正確な原本指導だ. 珍しいことは鬱陵島と独島が抜けるある一方対馬島と満洲地方を我が国で表示した点だ. 鬱陵島と独島の抜けたことは海上交通が発達しなかった時代だったから遠く離れるある島に対する領土概念が不足だったからで解釈になる. 一方対馬島は朝鮮前期までにしても我が国の領土という認識が支配的だったので遠く離れるある調整の管理が疎かなすきに乗じる倭寇の巣窟になったと判断意図的に我が国の領土に含ませたことに推測される. また満洲地方を表示したことはこの地域がヨッナッから私たちの領土だから鴨緑江と豆満江を境界にする領土意識から脱した万里思想のギョルグァヨブドンのに推定される.
位置国史編纂委員会に所長